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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망국의 치욕에 울분을 참지 못한 열혈남아로서 늘 광복을 그리며 살았기에 호를 상광이라 했다. 1916년 제주농업학교를 졸업, 1919년 동지 14인과 함께 미밋동산에서 3월21일부터 나흘 동안 조천만세운동을 전개할 때에 신명사숙의 젊은 교사로 학생들을 동참시킨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는 구실로 22일 체포되고 8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동미회를 조직하고 순국한 백응선의 묘비를 건립, 1920년 10월 친일파인 국민협회 총무 정병조의 반민족적 작태에 협박장을 보냈다가 또 8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늘 감시에 시달려 황해도 연평도로 은신 중 조국이 광복되며 여덟째를 낳자 전영해방 곧 전해라 명명하였으며 한국전쟁 중 어린 전해는 어머니 양춘석의 등에 업혀 남하, 조상에게 향화를 올리니 이는 하늘의 도움이 아닌가! 공은 애국의 표상이요, 애족의 본보기였기에 1997년 탄신 100주년 기념비 건립 추진위에서 비를 세우고 2008년 삼일절에 정부는 그 공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니 민족의 앞길에 지표를 삼고자 하여 이 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