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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망국의 치욕에 울분을 품었던 열혈남아이다. 1919년 조천 기미 독립만세의 선도자로서 3월23일 연행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8월형이 확정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1월 19일 석방되어 끝내 절의를 굽히지 않고 동미회를 조직 민중계목을 통해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자 왜경의 미행 감시에 시달려 황해의 연평도로 은신 광복의 날을 고대하였다. 공의 본관은 밀양이요 아호는 상광이며, 아버지 박희형과 어머니 김중형의 장남으로 1987년 6월14일 조천리 2755에서 태어나 제주농업학교를 6회로 졸업하고 향리의 신명사숙에서 교편을 잡아 민족교육에 열정을 쏟던 중 문도를 일으켜 조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공은 청주한씨 원빈과 만나 전우 전조 전호 전지 전훈 전비 전복 칠웅을 낳았다. 조국이 광복되어 며칠 지나 8남을 낳자 전택해방이란 뜻으로 전해라 명명하고 남하하려 하자 삼팔선이 막혀 황해도 해주군 취하면에 살았다. 1950년 한국동란의 와중에 전해는 어머니 양춘석의 등에 업혀 남하하였기에 조상을 위한 향화는 이었으니 천우신조가 아닌가! 아! 상광은 항상 빛나는 선각자로다. 이 땅을 사랑했길레 애국의 표상이요 후생을 가르쳤기에 애복의 본보기였네. 공의 탄신 일백주년에 즈음하여 그 위대한 생애에 고개 숙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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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박두규(朴斗圭) 선생 추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