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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철 교장께서 저번 같이 탐방하여 찾지 못한 박두규 선생의 추모비 위치를 애국지사 후손으로부터 받아 확인 후에 다시 찾았다. 제주시 용강동 193-3 밀양박씨문중 공동묘지이다. 저번 탐방시 찾았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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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규 선생은, 1919년 3월 21일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서울에서 3·1독립선언 이후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김장환(金章煥)과 그의 백부 김시우(金時宇) 등은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박두규를 비롯하여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들은 3월 21일 오후 3시경 인근의 주민과 서당 생도 등 약 500~600여 명과 함께 조천리 만세동산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위대열이 큰 길로 나서자 일제 무장대가 출동하여 박두규 외 12명이 체포되고 군중은 해산되었다.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22일~24일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다. 박두규는 1919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박두규는 1920년 10월 중순 경 제주 성내에 들어와 신일본주의(新日本主義)를 선전하던 국민협회(國民協會)의 총무 정병조(鄭丙朝)에게 협박장을 보냈다가 다시 체포되어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징역 8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