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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36.5 Air-Supply 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가족인 듯 가족 아닌 가족 같은 가족 - 대안적인 가족이 바꿔놓을 우리 사회 사진출처 SBS 홈페이지 47 SBS <썸남썸녀>를 보다보면 우리네 결혼관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직업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 30대 중반을 훌쩍 넘겨 미혼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다지 특이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일 때문일 수도 있고, 과거처럼 결혼에 강박을 갖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점점 나이가 차기 시작하면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삶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이런 프로그램에 공개적으로 나와 결혼까지 생각하는 만남을 시도하는 것.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런 만남만큼 중요한 다른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이처럼 같은 처지에 있는 남녀들이 한 공간에 함께 지내면서 그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는 그 관계의 특별함이다. 이들이 오누이 처럼 또는 자매처럼 서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다보면 마치 결혼이라 는 주제는 하나의 핑계처럼 보이고 대신 혼자 살아온 그들이 비슷한 처지에서 만나 정을 나누는 것 자체가 목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혼 그 자체보다 결혼 고민을 나누며 친구처럼 혹은 유사가족처럼 지내는 이 풍경은 그래서 미래의 대안적인 삶을 바라보는 착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썸남썸녀>가 그래도 여전히 결혼을 꿈꿀 수 있는 연령대의 남녀 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SBS <불타는 청춘>은 이제 결혼적령기를 훌쩍 지나버린 50대 남녀들의 ‘썸’을 다룬다. 물론 그들 중에는 결혼 했다가 돌아온 싱글도 존재한다. 하지만 나이가 오십을 넘겼다고 해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여전히 ‘불타는 청춘’으로서의 만남을 기대한다. 그들은 한 시골마을로 놀러가 꽃밭에 앉아 ‘007 빵’ 같은 옛 놀이에 빠지고 특별할 것 없는 밥 한 끼에 훈훈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밑에 깔려 있는 정서는 애잔함이다. 한때는 청춘의 아이콘들이었던 그들이 아닌가. 마음은 여전히 불타지만 몸은 나이 들어가는 그 모 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짠하게 만든다. <썸남썸녀>의 미래가 <불타는 청춘>처럼 보이는 건 과장이 아닐 것 이다. 이미 우리의 삶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불변의 전제로 받아 들이지 않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건 이른바 싱글턴의 삶 또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전언이다. 그들은 각자 혼자 살아가면서도 또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김용건을 대부로 세우고 그 아래 형제들처럼 관계가 이어지는 것은 그래서 확정된 미래라고까지 얘기되는 싱글턴이라는 대안적 삶의 한 방식을 보여준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룸메이트> 같은 프로그램은 이 싱글턴들의 새로운 주거문화로서 ‘셰어 하우스’를 소재로 삼지 않았던가. <썸남썸녀>부터 <불타는 청춘> 그리고 <나 혼자 산다>나 <룸메이트> 같은 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건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다. 그리고 이를 대체해 등장하고 있는 것이 ‘대안적인 가족’이다. 과거 MBC의 <사남일녀>가 보여줬던 가상가족의 이야기는 KBS <용감한 가족> 으로 이어지며 이제 가족 개념이 단지 핏줄과 혈연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보여주었다. 이제는 가까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이 형제이자 자매이자 부모와 자식이 되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들어와 있다. 그래서 <썸남썸녀> 같은 프로그램을 봐도 남녀 간의 썸이라기 보다는 가족이 될까 말까하는 그 관계의 썸을 먼저 발견하게 된다. ‘가족인 듯 가족 아닌 가족 같은’ 그 대안적 가족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껏 우리사회의 근간이 가족에 있었다고 한다면, 이 가족의 변화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들을 바꾸어놓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