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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조셉에 관한 소개는 잠시 보류해두겠습니다. 고향 방향으로는 평생 소변도 안 볼 것 같은 행크가 인디애나 주의 작은 마을에 되돌아간 건 어머니가 운명했기 때문입니다. 강산이 두 번씩 변한 후에야 만난 가족이건만 아버지와 형제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머쓱해하거나, 떨떠름해하거나, 냉랭해 하거나, 그렇게 3종 세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Be my guest(편히 지내라)” 라며 눈길을 주지만 행크는 불청객 (uninvited guest)입니다. 둘 사이 마음의 거리가 지구 한 바퀴쯤 된 데엔 사연이 있겠지요. 자연히 행크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고등학생 시절의 연인에게 찾아가 위로받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행크는 비보를 받습니다. 아버지가 살인혐의 공판에 회부될 처지가 된 것입니다. “Shit happens(젠장, 똥 밟았군)!”처음엔 그 정도로 대응하던 행크도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될 걸 예감합니다. 그의 아버지 조셉은 42년 동안 봉직한 판사이고, 자전거로 이동하던 사람을 그가 차로 치어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셉의 진술은 이렇습니다. “사건이 있던 날, 나 혼자 마트에 갔다. 그런데 집 쪽 도로가 폭우로 침수돼 있기에 다른 길로 차를 돌렸는데 신호등 앞에서 차를 세운 후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구나.” ‘부자간 앙금(father-son-angst)’의 골이 무척 깊지만 행크는 ‘무료변호 할당량’을 못 채웠다는 핑계를 대고는 변호를 맡기로 합니다. 과연 노스웨스턴 대학교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배테랑 변호사 행크는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할까요. 다음은 사건 개요입니다. 피살자는 마크 블랙웰입니다. 조셉은 오래 전 살인을 한 그에게 20년 형을 때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석방된 마크와 조셉은 그날 마트에서 마주쳤고, 따로 헤어진 후 마크가 치어죽었던 건데, 조셉의 동선이 사건 현장에 걸쳐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행크는 조셉이 “기억하지 못 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게다가 그게 항암치료 때문에 수반되는 기억상실 증상이기도 하다는 걸 내세우기로 합니다. 명예로운 판사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조셉은 아들에게 힘주어 말합니다. “Only guilty people refuse to take the stand.” 법정에 서길 거부하는 자는 죄 지은 이들 뿐이지. 마침내 변호에 나선 행크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There’s a real possibility that he was mentally impaired when he hit Mark Blackwell (피고가 마크 블랙웰을 차로 친 게 맞는다면 정신적으로 손상을 입었을 수 있습니다).” 행크의 기대대로 상황이 부자에게 유리하게 흘러갈까요? 반전이 기다리는 대단원에 이르러 검사가 행크를 역공합니다. “The law is the only thing capable of making people equal.” 모든 이를 평등하게 하는 것은 오직 법뿐입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행크가 긴장하는 내색이 역력합니다. 왜일까요? 조셉의 진술에 거짓이 있다는 걸 입증할 결정적 장면이 찍한 CCTV를 검사가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조셉은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모두를 속이고 있는’ 걸까요. 스포일러여서 가려둡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시나리오만 읽고도 울었다는 <더 저지>는 조셉이 유죄인지 또는 무죄인지 캐내는 과정에 덧붙여 가족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둔중하게 설파합니다. 서두에서 소개한 은유적 표현으로 되돌아가볼까요. ‘Family is not a word. Family is a sentence.’ 가족은 단어가 아닙니다. 가족은 문장입니다. 가족은 흩어진 단어들처럼 분열돼선 안 된다는 뜻이지요. 조화롭게 뭉쳐진 문장이 진정한 가족이란 뜻이지요. 또한 sentence엔 ‘선고’ 의 뜻도 있기에, 가족을 분열시키지 말고 잘 지키라는 판사의 ‘선고’ 이기도 한 것이지요. 영화는 행크와 조셉이 ‘문장이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