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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P . 1은 계획을 착수했을 때부터 주로 수평 미익의 부착 위치를 둘러싸고 E . E .사와 RAE 사이에 논쟁이 불거져 T자형 꼬리를 주장하는 RAE은 경쟁 업체 쇼트 브라더스(Short Brothers) 사에 더윈트(Derwent) 엔진을 단발로 장착한 실험기 Short SB. 5를 주문하여 테스트를 감행했다. 당시 영국에는 소규모 풍동 터널은 여러 군데 있었으나, 실제 크기의 항공 기를 넣고 테스트할 수 있는 초음속 풍동이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SB . 5는 RAE 방안에 따라 후퇴각 50도의 주날개와 T자 날개를 가졌지만 고속에서 피치 업하는 경향이 뚜렷해 결국 E.E.의 설계가 더 뛰어난 것이 입증되었다. SB. 5는 3가지의 주익 후퇴각을 시험한 결과, 원안대로 60도가 채택되었지만, 고받음각에서 박리 흐 름을 제어하기 위해 날개 앞전 외측에 펜스가 신설되었다. 이 실험을 전후하여 캔버라 시제기의 처녀비행(1949년)을 확인한 페터는 E.E.사를 퇴사하여 가문이 경영하는 신생 회전익기 제작사인 웨스트랜드 에어크래프트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P.1 개발은 프레드릭 핸들리페이지(Frederick Handley Page : 1885~1962)가 브리티쉬 에어로스페이스 사의 민간 항공기 사업부장으로 취임하여 대신 진두지휘하게 된다. 영국에는 그동안 고공을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캔버라를 요격 가능한 전투기가 자국에 없는 웃지 못 할 상황이 계속되었다. 프로토 타입 P.1A 1호기(WG760)는 1954년 5월에 롤아웃하여 8월 4일에 선보인 첫 수평비행에서 마하 1.2, 완강 하에서 마하 1.4의 경이적인 속도를 애프터버너도 없는 사파이어 엔진만으로 기록하여 기본 설계의 우수함을 증명했다. P . 1A 2호기(WG763)는 처음부터 페란티 화기관제장치와 연동되는 신형 ADEN 기관포, 파이어스트릭(Firestreak) 미사일을 갖추고 있었다. 2호기는 그밖에도 드 해빌랜드 (De Havilland) 블루 제이(Blue Jay) 패시브 호밍 공대공 미사일을 갖추고 짧은 항속거리를 보충하기 위해 동체 아래쪽에 착탈식 증가 연료탱크를 추가하는 실용화 시험에 제공되는 한편, 1호기는 학수고대하던 애프터버너가 추가된 사파이어 엔진으로 교체하여 초음속 시험에 대비한 수많은 개량이 가해지며 실용기에 가까워져 갔다. 개발진들이 바라마지 않던 추력 6톤의 강력한 에이본 200R(RA.24)을 탑재하고, 기수의 인테이크에 레이돔을 겸하는 쇼크 콘을 마련한 전투기 타입의 증가 시제기 P.1B는 1957년 4월 4일 첫 비행했다. 선행 양산형에 해당하는 이 형식은 2년간 20대가 제작되어 1958년 판보로 에어쇼 (Farnborough Air Show)에서 “번개(Lightning)”라는 공식 명칭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한편, P.1을 개발하던 도중인 1956년 10월 6일에 같은 에이본 엔진을 갖춘 라이벌 기체인 페어리 델타 2는1,811 km/h의 세계 속도 기록을 수립했으나, 지나치게 여유 없는 설계로 인하여 P.1과의 경쟁에 패해 제식 채용되지 않고 끝났다. 델타 2의 1호기인 WG774기는 1960년 이후 BAC 221로 개명한 다음, 오지익으로 개조되어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개발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 수집에 활용되었다. P . 1B를 수정한 라이트닝 F.1은 1959년부터 실전 배치가 진행되었지만, 맥밀런 보수당 정권의 던컨 샌디스 (Duncan Sandys) 국방장관은 악명 높은 “1957년 국방 백서 ( 1957 Defence White Paper)”를 통하여 “공군의 주력을 유인기에서 미사일로 전환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방침을 내세우고, 라이트닝 이외의 군용기는 개발 완성도에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계획이 중지되었다. 따라서 라이트닝은 “영국 최후의 유인 전투기”라고 하며, 이후 영국이 초음속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일은 현재까지도 없다. 시제기가 보여준 탁월한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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