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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동과 항일운동(윤치장과 남상목 의병장) 금토동은 경기도의 대표적인 의병장이 태어난 의기의 고장입니다. 대표적인 두 인물이 윤치장 의병장과 남상목 의병장입니다. 윤치장(尹致章, 1876~1971) 의병장은 대왕면 금토리 94번지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재옥, 자(字)는 치장입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1907년 우리나라의 군대가 해산되자 동지 7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조직한 뒤 1907년 음력 12월경 광주군 묵동(墨洞)에 주둔한 일본기병대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 후 양주 일대에서 수백 명을 이끌고 과감하고 능숙하게 공격하여 적의 간담을 자주 서늘하게 했지요. 1908년 10월 11일 미아리 부근에서 적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에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릅니다. 정부에서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게 됩니다. 남상목(南相穆, 1876~1908) 으병장은 낙생면 하산운리 81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호는 동천(東泉), 자는 문일(文一)이다. 그의 행적은 남상목 의병장이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 순국한 사실을 의병 부대에 알린〈통고문〉속에 자세히 전해오는데, 어려서부터 병서를 즐겨 읽었고 청년기에 일본의 수탈에 저항하던 그는 1905년의 을사늑약과 1907년 정미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의 군대가 해산당하는 등의 시국을 보면서 50여명의 의병을 모아 문경새재와 안성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큰 전투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안성전투 이후 무기공급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전쟁을 펼치려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안타깝게 순절하게 됩니다. 2008년 11월에는 순국10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 공동으로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