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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하시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1927년에 민족단일조직으로서의 신간회가 발족되었는바 신간회 광주지회장으로서 민족의 단결과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구하는 활동에 주력하시다. 한편 경기도 내의 포교를 위한 순회 강연과 독립정신을 함양하시다가 1930년 포덕 71년 천도교 중앙총부로 가시면서 1932년 4세 교주 박연호 춘암상사의 봉도가 되시다. 1936년 8월 한순회가 춘암상사의 명교에 의해 왜적 특별기도를 하도록 지방두목에게만 비밀히 전갈한 바 1938년 3월 4일에 천도교 중앙간부 중 한순회 외 3인이 황해도 사리원 경찰서로 압송되어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시고 해주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나 불기소로 5월 12일에 무죄석방되시다. 1952년 교화원장 재임 시 천도교 유지 재단을 설립하여 초대이사장에 취임하시고 1957년에 장로가 되시다. 평생을 구국의 일념으로 보내신 지사로서 천도교의 교리실천의 수범이 되셨으며 도덕적인 생활철학의 자연인으로서 사시다가 1961년 1월 27일 환원하시니 향수가 77세이시다. 위와 같은 공적이 인정되어 1993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로 표창을 받으시다. 천도교장로 제암 한순회 묘비 건립위원장 김정철 청주한씨 통덕랑공파 종친회 회장 한백효 서기 1998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