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page


9page

이윽고 여의도비행장 활주로 끝에 멈춘 비행기에서 내리자 착검을 한 일본군이 포위망을 좁혀왔다. 일본도를 뽑아든 대열도 대기하고 있었다. 일왕 히로히토가 포츠담선언을 수락한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의 군사권과 치안권을 일제가 장악하고 있었다.
9page

양측 사이에 긴장이 조금 누그러든 그날 밤, 여의도비행장 경비사령관 시브자와 대좌와 우에다 소자등이 맥주와 일본 술을 들고 일본군 막사에서 쉬고 있는 미군과 광복군 정진대를 찾아왔다. 분위가 익을 무렵 시브자와가 무릎을 끓고 이범석 김준엽 노능서 장준하에게 술을 권했다. 항복주였다. 그 밤 장준하는 난생 처음 술을 마셨다. 일본군이 광복군에게 항복의 예를 취한 오직 한 번의 술잔이었다. 긴 실랑이 끝에 이튿날 19일 하오 5시 무렵 평양에서 실어왔다는 가솔린을 주유한 비행기는 여의도를 이륙하여 기수를 중국 산둥성으로 향해야 했다. 한국광복군 정진대는 고향을 떠날 때처럼 봉투에 흙 한 줌씩을 담고 수통 가득 물을 채운 뒤 수송기에 올랐다.
9page

이곳 여의도 활주로에 그로부터 70년 만에 비행기를 착륙시키고 그 기록을 남긴다. 비행기가 서 있는 위치는 70년전 C-47수송기 바퀴가 땅에 닿은 지점에서 멀지 않다. 이 비행기는 한국광복군 정진대와 임시정부 요인들이 타고 온 것과 같은 기종인 C-47수송기다. C-47수송기는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협조로 성남비행장에서 옮겨왔다. (운반/설치 청연항공기술) 〈돌베개〉 내용은 장준하 선생측 유족의 허락을 얻어 구성하였다. 광복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추진단 2015년 8월 18일 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