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page

普化鐘樓(보화종루) 건립문 단기 4256년 9월, 관동대지진때, 억울하게 죽은 우리동포들의 넑을 달래기 위해, 여기 고진 관음사 경내에 보화종루를 세우고 이 '위령의 종'을 건립하는 바이다. 한국13개 시도의 흙을 모아 한국의 기와와 목재로 한국식 단청으로 정성들여 만들어지 이 종루는 현해탄을 건너와서 이자리에 선다. 그때 그날의 끔찍하고 어두운 역사는 그 날의 비명들과 함께 묻혀버리고 원혼들은 그대로 버려져 왔으나 뜻 있는 일본인 특히 여기 관음사의 2대에 걸친 주지 스님은 위령의 탑파를 모셨으며, 많은 시민 그룹이 스스로의 치부를 캐내는 작업을 벌임으로써 잃어버힌 역사는 재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른다 '조선인내습, 유언의 허구성도 기록하기조차 싫은 광기의 진상도 반세기가 지나면서 세상에 드러나고야 말았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인은 그 어두운 역사를 미워하고 슬퍼할지언정 오늘의 일본 오늘의 일본인을 꾸짖고 싶지 않다. 오히려 역사를 정시하며 역사앞에 겸허한 일본의 우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광복 4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20주년 이 해에 조그마한 종을 바치면서 오늘낭릐 한국인은 무량한 감회를 안고 있다. 이 습지야 들판의 잔잔한 메아리가 모든 한국인,일본인의 가슴에 닿아 서로 사랑하며 뜨겁게 손잡는 진원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이 종소리를 함께 들으며 63년전의 슬픈 역사를 함께 생각하고 그 숱한 희생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오늘의 한.일간의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을 함께 다짐하자. 단기4318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한국인희생자 위령의 종 건립위원회 고우식 문, 홍석창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