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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에 대한 사연은 왼쪽 게시판에 마우스를 올려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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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width=500><tr><td>400여 년 된 고찰 관음사가 있다. 뜻있는 일본인 주지 스님의 배려로 이곳에는 관동대지진 때 희생된 재일 한국인 6명의 넋이 안치되어 있다. 관음사는 야치요시는 물론 인근에도 널리 알려져 고정적으로 시주하는 집만도 300가구가 넘고 있다. 세끼(關) 집안이 주지를 계승해 와 현 주지스님인 세끼 고센(關光禪·72세)은 25대째이다.<br> "어려서 아버로부터 들었지요"<br> 1954년 관음사의 주지가 된 세끼 주지는 돗토리현(鳥取縣) 출생으로 직접 경험은 하지 않았으나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 관동대지진에 대해 아주 많이 들었다.<br> "당시 이 부근에는 포로 수용소가 있어 일러전쟁시의 소련인 포로, 청일전쟁의 중국인 포로가 수용되어 있었지요.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곧 유언비어가 퍼졌대요. 유언비어 내용은 「조선인이 민가에 방화를 했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화재를 당한 사람은 없었지요.<br> 많은 조선인이 끌려갔고 9월 5일경 군으로부터 조선인을 데려가라는 명령이 내려졌어요. 그래서 부근의 다까즈(高津) 농민들은 조선인을 인수하러 가야만 했어요. 이 절에서 300m 떨어진 곳에 나기노하라(ナギの原)라는 공유지가 있는데, 농민들은 관청에서 조선인의 손을 뒤로 묶은 채 데려와서 나기노하라에서 눈을 감기고 일본칼로 베어 그곳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어요.<br><br>출처 : <a href=http://www.5858.pe.kr/03/kwandong_read1.htm target=_blank>김종영</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