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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 상지대학 독법과에 입학 1935년에 졸업 그 당시 왜경이 우리를 가혹하게 다루는것이 날로 심해지매 님은 독립운동에 적극투신하여 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일본 외교관계 담당으로 미영불 국사절에 활약 요시찰 인물로서 왜경에게 피검됨이 십수회에 이르고 님의 모든 동정을 정찰당하므로 멀리 미국으로 건너가 그 뜻을 이루고자 했으나 1941년 일본에서 임시정부의 자금조달계획으로 인하여 국내유지에게 자금조변차 밀서를 일본에서 귀향하는 소녀에게 비탁했으나 불행 그 밀서가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도중 탄로되어 일본 동경에서 피포당하여 부산형무소에서 정치범으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다. 일본에서 거물급 독립투사가 잡혀온다라고 경남경찰부 유치장에서 수근거릴 정도로 의사의 비중은 컸다. 조선사람이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 여러차례 불려다가 몹시 사나운 곤욕을 치르는 악랄한 고문에도 일제 유구무언했다. 아무리 심한 고문도 끝내 배후와 연루에는 묵비리로 일관되고 결심도 단독범이라면서 악형에서 악형으로 이어지다. 1942년에 옮긴 대전형무소에서 조국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8일에 혹한으로 옥중에서 순절하니 오호애재라 원통함이여 나라잃은 백성이 국권회복을 위하여 싸우다가 원혼이 되었으니 어찍 통탄하지 않으랴. 생자필멸이 인지상도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앞날이 양양한 40대를 일기를 유명을 달리한 님의 일념이신 조국의 광복을 눈앞에서 보지 못하고 요절하니 하늘도 땅도 산천초목까지도 어찌 무심하고 무정하지 않을소냐. 유족들 정성으로 님을 화장하여 이 고장 곤양 선영에 장례하다. 님이시여! 평안히 눈 감으시고 영면하소서 지금와서 여론이 널리 일어나온 뜻을 가져 여기 님의 사적을 기록하여 곤양성 내 한 길가에 의사님의 기적비를 건립하여 나랏 사람들의 생각을 여기에 영원하게 하노라. 夫人一生(부인일생) 誰則無死(수칙무사) 死而得○(사이득○) 斯爲美耳(사위미이) 堂堂崔公(당당최공) 生丁不辰(생정불진) 愛自弱冠(애자약관) 志節嶙峋(지절인순) 憤涕盈衿(분체영금) 挺身直前(정신직전) 誓與日賊(서여일적) 不共一天(불공일천) 斧吭鉅腹(부항거복) 任爾恣虐(임이자학) 惟此寸丹(유차촌단) 百死靡鑠(백사미삭) 身殄魂愉(신진혼투) 上訢蒼旻(상흔창민) 蒼旻悔禍(창민회화) 權域回春(권역회춘) 肆揭義績(사게의적) 昭示衆萬(소시중만) 君則何有(군칙하유) 爲於民勸(위어민권) 광복의사 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 무신 1968년 광복절 유당 김종하 작 을축 윤 8월 광산후인 김영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