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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최원형 기적비 이명산의 준령지세를 받고 낙동강의 유역을 굉굉히 감돌아 곤양남산 기슭 맥사리에서 정기를 받아서 애국자 최원형 의사가 고고히 이 세상에 태어나다. 의사 최원형님은 그 본이 경주요 여러 대로 곤양 서부 맥사리에서 살았다. 님의 부명은 채술 모는 이천서씨이며 광무제 1901년 3월 13일이다. 5세에 벌써 서당에서 천자문과 사략을 읽혔으니 매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11세에 곤양보통학교 입학 4년의 수학을 마치고 1916년 경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인산식을 기하여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피보로 동대문경찰서에 6개월간 구금되면서 퇴학을 당했으니 님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독립선언서를 몸소 간직하여 고향인 곤양으로 돌아와 숙부 범술에게 전달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보급하며 무릇 뜻있는 사람들이 곤양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온마을 온 고을을 메아리치다. 님은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옥중에 이르게 되자 갖가지 악형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 후 님은 출옥되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 중학부에 편입학하였고 그 이듬해 1921년에 숙부 범술도 일본으로 유학하여 여러 호기롭고 뛰어난 동지들을 두루 만나며 광복을 꾀하는 대열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