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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문을 쓰신 최범술 선생의 보훈처 공적사항은 다음과 같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해인사(海印寺) 지방학림(地方學林)에 재학하면서 서울에 유학 중인 최원형(崔垣亨)으로부터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받아가지고 동지들과 함께 만여매를 인쇄하여 합천(陜川)·의령(宜寧)·진주(晋州)·사천(泗川) 등 일대의 책임을 맡아 배포하면서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 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1931년 3월 한용운(韓龍雲)이 불교계의 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을 조직하자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피체되어 징역 6월형을 받았으며 그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서 피검되어 투옥되었다. 1942년 7월 김법린(金法麟) 등과 해인사·다솔사(多率寺) 등에서 수강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운동에 연루되어 홍원(洪原)경찰서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