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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김대락, 김동삼 등과 같이 안동에서 활동하다가 경술국치 이후 이들이 중국 만주로 활동무대를 옮길 때, 조국을 떠나면 나라를 영원히 잃게 된다고 주장하며 국내에 남았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손두원·손영학 등과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친인척 및 동네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오후 3시경 길안면 천지(泉旨)시장에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자 수백여 명의 군중들이 합세하였다. 시위대는 길안면사무소로 몰려가서 직원들에게 시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유리창을 비롯한 기물을 파괴하였다. 이어 천지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일경들과 대치하며 기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 밤 늦게까지 만세시위운동은 계속되었고, 결국 일경의 발포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일제는 이날의 만세시위운동의 주동인물을 색출하기에 혈안이 되었고, 끝내는 체포된 시위자들을 추궁하여 주동 인물의 소재를 알아냈다. 그리하여 3월 24일 저녁 일본인 순사 삼본(衫本)은 부하들을 데리고 임하면 오대동으로 와 손두원을 찾아 총살하였다. 이어 25일 저녁 다시 오대동에 와 김필락을 찾아내 총살함에 따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