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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3월 유림이 주도한 파리장서운동으로 상해에 망명하여 활동중이던 김창숙이 몽고지방의 미개간지 20만정보를 구입하여 남북 동삼성에 산재하고 있는 동포들을 정착하게 하여 독립기지화하고 군대를 양성하여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위하여 국내의 삼남지방에서 20만원을 모집하기로 계획하여 먼저 송영호·김화식등을 입국하게 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게 하였다. 1925년 11월 17일 중국에서 김창숙의 지령을 받고 입국한 송영호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취지를 들은 그는 모험단원에 가입하고 영양군 부호인 외숙부 이헌병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지시를 받고, 권총을 줌으로 이를 받았으며, 비밀입국한 김창숙을 대구(大邱) 남산동(南山洞)의 숙소에서 만나 군자금 모집사령과 격려를 받았다. 1926년 1월 15일 김창숙으로부터 숙부 이헌병에게 군자금 10,000원을 모집하라는 지령에 따라서 군자금을 제공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현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정수기로부터 군자금으로 1,000원을 받아 송영호에게 전달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다가 피체되었다. 이에 1927년 3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형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