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page


8page

독립지사 윤병호 선생의 비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43-1-39호 / 소재지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노량공원 내) 창남(滄南) 윤병호(尹炳浩: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은 1889년 8월 5일 경남 남해군 설천면 문의리에서 출생하여 보성전문학교 수학 중 1909년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신민회(新民會)계열의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3.1운동 직후에는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국내외의 연락을 담당하는 연락기관인 백산상회(白山商會)를 관리하였다. 1919년 11월에는 애국청년들을 민족간부로 양성하기 위하여 안희제와 함께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를 조직하여 다수의 애국청년들을 인재로 양성하였고 1929년 10월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 朝鮮語學會의 前身)가 조선어사전 편찬회(朝鮮語辭典編纂會)를 조직하자 가입하여 사전 편찬사업에 참가했다. 1942년 10월에 일제가 한글학자와 한글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 사건(朝鮮語學會事件)으로 구속되어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고, 기소유예로 석방되었으나 실질적으로 2년의 옥고를 겪다가 1974년 7월 13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임종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