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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교과서에 실린 이 고장 출신 김덕형씨의 이야기이다. 이승만대통령께서는 김씨의 선행은 동방예의지국 우리 민족의 성품을 잘 나타낸 자랑스러운 일로써 이를 교과서에 올려 온 국민이 실천해야 할 도의적 표본으로 삶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문교부에 특별 분부를 내려 1957년 초등도의 6학년 교과서에 "남해의 전공비"란 제목으로 등재된 것이다. 이는 또한 인정 많고 선량한 우리 남해인의 기질을 보여준 아름다운 이야기로써 돌에 새겨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다. 17. 남해의 전공비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11년이 지난 1956년 11월이었다. 남해도의 망운산에서는 미국 대통령 특사와 여러 손님이 모인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를 새긴 미공전공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이 기념비는 태평양전쟁때에 우리나라 해방을 위해 싸우다가 이 곳에서 전사한 미국공군 11명의 넋을 위로하고 그 공을 높에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험한 산에 솟아있는 기념비가 단 한사람의 힘으로 11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모든 어려움과 괴로움을 겪어가며 완성된 것을 알 때 우리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는 우리나라 해방되던 해의 8월 7일 밤에 시작된다. 일본을 부수기 위하여 날아온 미국폭격기가 일본군의 고사포에 맞아서 이곳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타고 잇던 미국공군 11명도 전사하고 말았다. 일본군은 부서진 비행기와 미군들의 물건만을 가져가고 시체는 그대로 두었다. 이것을 본 이 지방에 사는 김 청년은 사람의 존귀함에 비춰 그대로 둘 수가 없어 국경을 넘은 인류애로 남의 눈을 피해가며 시체를 정성껏 매장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이 일본군에 알려져 적을 돕는 행위라고 청년을 잡아 갖은 벌을 주었다. 한 때는 생명까지 위태하였지만 8.15 해방을 맞아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평소에 남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남을 위하여 일하기를 즐기는 이 청년은 자기의 몸이 자유롭게 되고 우리나라가 해방되자 어떻게 해서라도 이들의 공을 길이 남겨 한미친선에 도움이 되도록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사슬이 풀린 지 며칠도 안 된 8월 20일에 우선 이 무덤에다 나무로 십자가를 세우고 먼 길을 오르내리며 터도 닦고 꽃도 심어 둘레를 깨끗이 하였고 장차는 이들 무명용사의 성명을 알아 내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미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들의 이름을 밝혀주기를 청하였다. 미군은 이 용사들의 시체를 본국으로 옮기게 된 것을 알려왔다. 그는 기쁘게 생각하며 자진해서 이 일을 도맡아 수일 동안이나 정성을 다하고 다시 그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였다. 그는 곧 기념비를 세울 계획을 하였지만 경비가 문제였다. 여러 사람의 힘을 얻으려고 기부금을 모집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일이 흘러 미군이 전사한 3주년을 맞아 그는 이 자리에 올라가서 십자가 앞에서 혼자의 힘으로라도 기어이 이 사업을 성공시키겠다고 맹세하였다. 마침 이 훌륭한 뜻을 알게 된 친구의 도움으로 약방을 개업하고 그 이익금을 비석을 세우는 자금으로 모았다. 이와 같이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되던 1950년에는 뜻하지 않은 공산군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공산군은 김청년이 평소에 미군과 친하다는 트집을 잡아 그의 총재산인 약품을 전부 빼앗았다. 김 청년은 몸을 감추고 있다가 휴전 후 다시 이 사업을 완성하려 하였지만 모아둔 자금으로는 감당할 도리가 없어 3년이나 깔린 돈을 받으러 다니기에 힘썼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그는 비석의 크기보다는 정성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1955년 1월에는 겨우 기초공사를 끝내게 되었다. 김 청년은 미국대사관에 부탁하여 용사들의 주소와 유가족의 이름도 알아내고 비문을 만들어 이승만 대통령에게 비의 제목을 친히 받게 되었다. 드디어 156년 5월 11일에 11년이나 계속한 노력의 결정인 전공비가 완성되었다. 이 비석은 자연의 바위에 새긴 것이다. 그 높이가 4m 가깝다. 그 크기로 보아서는 대수로운 것이 되지 못하나 이 험한 산중에다 한 사람의 힘으로 국제친선을 위하여 애쓴 정성이 큰 것이다. 기념비가 준공되자 이 해 8월에는 처음으로 이 용사들에게 대한 군민합동 추도식이 있었고 11월 30일에 기념비 제막식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초등도의 6학년 / 1957년 3월 10일 박음 / 1957년 3월 20일 펴냄 / 지은이 문교부 / 펴낸이 대한서적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