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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 황태자가 된 때 하례은전으로 감형되 귀국했다. 나라가 일제에 병탄된 뒤 재기를 도모하던 중, 1912년 음 9월 18일에 고중 밀서에 병로 전라남도 순무대장에, 그 해 말에 전라남.북도 순무총장이 된 후, 서울서 대한독립 의군부를 만들었고, 1912년 음 12월 27일에 정이품 자헌대부 대한독립의군 원수부 사령총장에 임명됐다. 익년 음 1월 13일에는 아들 응철을 서울로 보내어 거사를 모의케 해, 3월 23일에 8도 전국대표로 독립의군부 조직을 전국에 확대했으나, 어느 동지의 부주의로 탄로 일경에 잡혀 실패했어도, 임의사는 독립의군부 총사령으로 일제의 내각 총리대신과 조선총독 등 관원에게 국권 반환요구서를 내고 면대 항변항쟁을 했다. 1914년 6월 3일 일본경찰에 체포되자, 자결하려고 칼로 목을 찔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달 15일에 거문도에 유배되어 고도 일인촌 폐가에 영금되 일인 만행에 치를 떠는 임의사를, 당시 유지 원세학 공이 신병을 보증하고 서도 덕촌마을로 옮겨, 은밀히 학동들을 가르치고 귤은의 수제자 귤당의 당기를 지었다. 임의사는 1916년 5월 23일 우국충정으로 단식 순국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단기 4330년. 서기 1997년 10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