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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신안은 일제식민지 암흑기에 항일구국의 횃불을 드높게 쳐들었던 한줄기 빛이었다. 선열들은 서기 1914년 송내호 선생의 지도하에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에 걸쳐 수의위친계를 조직한 것을 비롯 1920년 배달청년회, 1924년 소안노농대성회, 1926년 살자회, 1927년 일심단 등을 조직하고 양기탁 김기한 명제세 선생 등 민족지도자들과 협의 독립군자금의 모금과 노동자 농민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조직 요원을 항일운동의 전초기지인 상해임시정부와 중국 일본 등지에 파견 동양 3국을 무대로 반제 반봉건 투쟁을 전개하시었다. 1922년 토지계쟁사건의 승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전 면민의 성금으로써 설립한 사립소안학교는 1913년 김사유 선생께서 설립한 중화학원을 승계한 학교로서 민족의식 고취를 통한 항일투쟁 본산의 역할을 수행해 왔던 바 일제는 이 학교를 반체제 교육기관으로 규정 1927년 강제 폐쇄하였다. 이에 선열들은 국내외 항일단체들과 연계하여 가일층 격렬한 항일운동을 전개하시었다. 이러한 일련의 항일운동은 이수노 이강락 선생께서 형장의 이슬로 산화하셨던 동학혁명의 참가 이준화 선생 등이 참가하여 일인을 타살했던 1909년 자지도등대 습격의거 그리고 최성태 김사유 신완희 선생 등 면민 대표와 김채원 김경태(金敬太) 선생의 참여하에 1909년부터 장장 13년간이나 거면적으로 전개되었던 토지계쟁사건 등으로부터 줄기차게 이어졌다. 송내호, 정남국, 신준희, 강정태, 최평산, 최형천, 신광희, 김남두, 김통안, 김홍기, 송기호, 신동희, 백형기, 이갑준, 박기숙, 이월송, 신만희, 박흥곤, 이정동, 이낙신, 이각재, 주채도, 최병우, 최기정, 신우승, 박화국, 이형두, 위경양, 이수산, 김중안, 이재섭, 신구희, 최익재, 이평재,강경도, 박임혹, 김양숙, 박동수, 고오길, 신길조, 김응섭, 김득운, 박남두, 이병재, 신홍희, 김경규, 박경규, 임재갑, 나봉균, 김병규, 장진우, 강우열, 정권익, 정윤섭, 정광택, 강세원, 천기정, 권유섭, 이향춘, 김광재, 김재수, 서중현, 장한준, 이흥쇄 선생 및 전라도내 각 지방의 강석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