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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이 낳은 애국지사 정남균선생의 본관은 경주요 아호는 벽파라 이르셨다. 선생께서는 조국의 운명에 어둠이 깔리던 1905년 3월 3일 이곳 구성리에서 고 정재언옹의 장남으로 태어나시어 1922년 3월 완도보통학교를 거처 광주농업학교에 진학하셨고 1927년 동교를 졸업하신다음 사립약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으며 815후에는 대한독립촉성회 약산면지부장으로 게시다. 1950년 9월 24일 타계하셨다. 광주농업학교 재학중인 1926년 11월 동문인 박인성 문병수 정동수 그리고 광주고등보통학교 장재성 왕재일 정우수외 10명의 동지들과 더불어 항일독립단체인 성진회를 조직하여 조국광복을 위한 고난의 길을 걸으셨으니 1928년 사립약산학교 재직중에는 배일사상을 담은 유인물 배포로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에서 벌금형을 받으셨고 1929년 11월에는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성진회동지들과 더불어 주도하여 활약하시다 익년초 고흥에서 왜경에 피체 잔학스런 고문을 당한끝에 동년 10월 정로난 35명의 동지들과 함께 광주지방법원에 3년형을 받으시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셨으니 1977년 국가는 선생의 공을 표창하여 추현하였다. 민족수난의 길고도 어두웠던 계절 피와 눈물로 얼룩진 수많은 사연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선생의 업적이기에 이를 길이 전하고자 뜻을 같이한 동료 후진들은 삼가 선생의 영전에 숙연히 합장하여 여기 이 뜻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