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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소유권 반환투쟁 승리기념비. 1905년 일제의 침략 정치가 시작되면서 토지조사사업이 벌어졌다. 당시 소안의 토지는 궁방전으로 그 수조권은 이기용 자작에게 있었고 경작권은 면민들에게 있었다. 그런데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왕실과 친화할 목적으로 소안면 전 토지를 이기용 소유로 만들어 버렸다. 이로 인하여 소안면민은 일시에 소작인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안게되었다. 이에 격분한 면민들은 1909년 최성태 김사홍 신완희 선댕을 면민대표로 선임하고 '전면 토지 소유권 반환 청구소'(일명 토지 계쟁사건)를 제기하고 거면적 투쟁을 전개하였다. 송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김채원 김경태 선생의 조력도 있었다. 이 소송투쟁은 13년만인 1921년 2월 14일 승소하여 전면민은 토지소유권을 향유하는 결실을 얻게되었다. 전면 토지 소유권을 회복한 전면민들은 위 면민대표들에게 송덕비를 세워주겠다고 제의한바 있었으나 대표들은 이를 사양하였다. 이에 면민 대회시 최기정씨의 완전한 교육기관 설립제의로 사립하교 설립을 결의하고 육원의 면민들은 뜨거운 뜻을 모아 의연금 일반사백오삽사원을 모금하였ㄷ. 이렇게 하여 토지소유권 반환투쟁은 사립소안학교 설립으로 결실을 맺었다. 사립소안학교는 1922년 5월 1일 인가를 받아 1923년 5월 16일 개교하였던바 이 학교에서는 항일운동의 지도가를 양성하는 민족해방운동의 기지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우리는 토지소유권반황청구 승소를 사립소안학교 설립으로 이어갔던 면민들의 숭고한 항일투쟁 정신을 기리고자 이곳에 승리기념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