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page


133page

앞서 탐방한 2분 외에 애국지사 장석칠 선생의 묘소도 이 대모도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산 속에 있고, 길도 없고, 묘비도 없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조카되는 분과 통화한 결과 곧 현충원으로 이장 예정이라고 한다. 1923년 9월 완도군 청산면 모도리의 대모도 서부락에서 십수명의 청년들과 함께 배달청년회(1925년에 모도청년회로 개칭)를 조직하여 선전, 교양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청년회 조직의 목적은 원래 마을의 개량서당을 후원하는 것이었으나 회원들간에 점차로 민족독립사상이 고취되어 감에 따라 그들은 회의를 열 때 마다 애국가와 혁명가를 합창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서당 생도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치며 [조선독립만세]를 삼창하기도 하였다. 또한 회원들은 1925년 1월의 월례회의에서 "우리는 절대 일본인 및 친일인에게 동정하지 말고 그들과의 교제를 단덜할 것"을 결의하였고, 같은 해 4월의 월례회의에서는 "경찰당국 및 일본인을 파괴할 것"과 "우리는 절대로 대한(大韓)을 위해 활동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러한 활동사실로 인하여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피체된 그는 1926년 6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