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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친일파에게는 어떤 동정도 기대하지 말고, 그들과 교섭을 단절할것"을 결의 하였고, 4월에는 "일본 경찰당국과 일본인을 살육해서라도 대한국을 위해 활동하자"는 결연한 의지를 다짐하였다. 이러한 운동은 1925년 10월 21일까지 개량서당에서 매월 모임을 갖고 추진되었으니 이는 일제 필망론으로 가득찬 선열들의 애국정신과 전 도민의 일치단결을 보여주었다. 또한 1924년을 전후하여 모도노동회가 조직되어 노동운동을 펴는 한편 야학운동과 모도 서부 원숙지원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 노동회 집행위원장에 최정숙, 상무위원 장한준, 정두실, 조사위원 정원재, 고양부위원 김내숙 간부위원 천병섭, 실무부위원 문승묵 그리고 김민곤선생등이 참여하였다. 이러한 줄기찬 항일운동은 지도자들이 일경에 피체되어 1926년 6월 29일 광주지법 장흥지청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던바 천병섭 장한준선생 징역 1년 정두실 천홍태선생 징역 10월 최창규 서재만선생 징역 6월의 처분을 받았다. 불행히도 천홍태선생은 복역 6월중 순국하였다. 작은 섬 모도에서 이러한 선열들의 줄기찬 항일운동의 함성이 드높았음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선열들의 이러한 위대한 투쟁이 없었던들 어찌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후손된 우리들은 이 작은 돌에 선열들의 얼을 새겨 여기 기념비를 세우고 그 고귀한 정신을 대대손손 전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