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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는 포악무도한 왜적으로부터 유사 이래 그 유례가 없는 굴욕적인 침략을 받아 국권은 송두리째 빼았기고 민족의 자유는 여지없이 박탈당하여 삼천리강산은 흡사 감옥으로 변하고 이천만 동포는 포로가 되어 참담한 질식상태에 빠지게 되었었다. 이러한 절망의 벼랑에서 1919년 3월 1일 분연히 궐기하여 항거의 봉화를 들었으니 기미3.1만세는 한일합방에 대항하는 통분의 함성이요 자유와 독립을 되찾으려는 비장한 절규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국권을 회복하려는 당당한 주장이었다.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진 거대한 불길의 폭발이었다. 그러므로 삽시간에 삼천리 방방곡곡에 번져 하늘이 뻐개지고 땅이 흔들릴듯한 맹렬한 기세였다. 이러한 정당하고 평화적인 궐기에 대하여 왜적의 탄압은 어떠하였던가. 잔인하고 악독한 살육과 형벌이었다. 이해 4월 4일 우리 강진에서는 여러 의사가 장터에 모인 수만 명의 군중에 앞장서서 이 태극기의 물결을 지휘하던 중 무자비한 왜적의 총칼 아래 장렬한 순국의 영령이 되고 혹은 피나는 옥고에 시달린 분도 많았다. 이 숭고한 선열의 뜻을 이어온 우리 강진군민은 3.1정신을 이어받아 창간한 동아일보사와 합작하여 유서깊은 이 곳에 이 기념비를 세워 그 거룩한 정신을 만대의 후손까지 길이 받들어 드높이려 한다. 1976년 5월 9일 동아일보사, 강진3.1운동기념비건립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