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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사 -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물 제53-1-4호 이 서당은 면암 최익현 송사 기우만 민재 박임상 등 3명의 유학자를 모신 사우로 박임상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제자 수 십 명을 규합하여 최익현 의진에 참여하였으나 최익현이 대마도로 잡혀가 순국하자 심상3년(心喪三年:마음속으로 복을 입는 것)을 마치고 이 나라 선비의 맥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중암 김평묵 선생의 유배지였던 지도두류(智島頭流)에 단(檀)을 설치하고 이항로, 기정진, 김평묵, 최익현 등 네 스승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 후 최익현과 기우만 선생의 사우를 건립코자 부지를 다듬다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뜻을 못 이루고 1944년 그 아들 현풍에게 두 선생의 사우를 꼭 세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못본 채 사망하였다. 이에 박임상의 제자들과 자손이 합심하여 평산사를 건립하고 최익현.기우만 두 분 선생을 봉안하고 2년 후 박공을 배향하여 오늘날 도내 유림이 음력 3월 10일 제사를 받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