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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에 현창코자하는 분들은 이 마을 출신으로 폭정을 제거하여 도탄에서 허덕이는 민생을 구하고 일본 등 외세를 물리처 민족자주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제폭구민과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일어선 동학혁명에 참여하여 대한침약을 목적으로 반일세력인 동학군을 소탕코자 내침한 일본군과 싸우다가 순국하신 여섯분과 일본침약에 항거하였던 의병장 한 분 등 일곱분의 고귀한 우국정신을 후세에 전하여 애국애족의 귀감으로 삼고자 마을주민과 유족의 뜻을 모아 이 현창비를 세운다. 김응문(1849~1894) : 본관은 나주 별호는 茶史(다사)인데 일직 동학에 입문하여 이 지방접주로서 동동학혁명 시 백산 등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나주입성을 위한 고막원전투(1894년 11월 16~17)에서 폐하고 일군에 체포되어 1894년 12월 8일 무안형장에서 처형당했는데 그의 아들 우신도 동학혁명군에 참여하였다가 아버지와 동일시에 처형됨 - 증손 재오 김영구(1851~1894) : 본관은 나주 별호는 淵史(연사)임. 접주 김응문의 동생으로 동학혁명군에 가담하여 고막원전투시에 일군에 체포되어 1894년 12월 12일 무안형장에서 처형됨 - 증손 남영 김덕구(1868~1894) : 본관은 나주 별호는 農窩(농와)인데 접주 김응문의 아우로서 동학혁명군에 가담하여 고막원전투시에 일본군에 체포되 1894년 12월 8일 무안형장에서 처형됨 - 손 길형 김효구 : 본관은 나주며 동학혁명군으로 접주 김응문의 휘하에서 활약하다가 고막원전투현장에 체포되어 1894년 12월 8일 무안형장에서 처형됨 김성권 : 본관은 나주며 접주 김응문의 휘하에서 활약하다가 고막원전투시에 일군에 체포되어 현장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고 귀가 중 노상에서 사망함 김용길(1886~?) : 본관은 나주며 항일 의병장으로 1909년에 수 많은 장사들을 이끌고 일로부흥정소재의 일본헌병대의 습격 방화하고 또 일군주둔지를 습격하다가 이를 체포코자 사창리에 설치한 일본헌병대의 추격에 못 견디어 상해로 간다고 떠난 후 소식이 없음 - 증손 주형 1996년 9월 일 차뫼마을 주민 일동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