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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굴욕이란 죽음보다 참기어렵고 자유의 희원은 생명보다도 차라리 강하다. 1919년 3월 1일 겨레의 힘을 묶어 굴욕을 박차고서 자유를 달라 외친말이다. 서울에서 부른 만세소리가 남북 강산으로 퍼져가고 고을마다 메아리쳐 일어나던 때 이곳에서는 뜻있는 이들이 범동포 갯가에 같이 모여 의논하고 곧 부락마다 연락하여 약속한 사월 십이일 정오 대청천 언덕으로 하나,둘 군중들이 몰려드니 자못 3,000여명, 지축을 흔드는 북소리,나팔소리, 만세소리 그것은 오직 민족혼의 우렁찬 행진이었다. 그날 일본 헌병들의 야만적인 총탄 발사로 동지들이 쓰러지자 군중은 더욱 분격하여 무계리의 일본 헌병출장소를 파괴하였으나 김해읍 응원병과 부딪쳐 부득이 해산되고 주동자들은 옥고를 겪으므로서 끝났지만 겨레의 혈관속에 그 정신 맥맥히 살아 있어 마침내 원하던 조국의 독립을 성취했기에 그날 이곳 장유면 동포들이 항쟁한 사적을 새겨 이 고장 후손들에게 전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