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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배동석지사의 생가터 (경남 김해군 김해면 동상동 981번지) 배동석(1891~1924)은 김해3.1운동 시위를 주도한 인물로서 달성이 본이며 고종28년(서기 1891) 김해교회설립자 배두성의 아들로 김해시 동상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김해합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06년 대구계성학교 재학중에 배일사상 혐의로 체포되어 3개월간 복역하고 출옥 후 서울 경신학교를 1910년 졸업하였다. 이때 독립선언문 대표 33인중 한사람 이갑성을 만나 대한광복회 일원이 되었다. 1916년 5월 독립활동기금 전달을 위해 만주로 가서 김좌진등과 함께 독립활동을 하다 1918년 귀국하여 경성연합의료전문학교(세브란스 의전, 현재 연세대학교 의대)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 만세시위운동의 학생대표로 참가한 후 김해로 내려와 3월 30일 밤 임학찬, 배덕수등과 함께 현 동상동 전통시장 인근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다 체포되었다. 지사의 시위를 시작으로 4월5일 진영 하계면(진영시장), 4월 11일 명지면, 4월 12일 장유면 무계리(무계장터)에서 3,000여명의 대한독립만세 시위가 벌어지는 등 김해지역 만세시위는 이어졌다. 이후 배동석은 민족대표 33인의 재판과 관련하여 조사받기 위해 경성으로 압송되었고 1920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10년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 중 손발톱과 두 눈알이 뽑히는 등 일제의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다 폐렴까지 얻게되었다. 세브란스 병원장의 알선으로 보석되었으나 2개월 후 2914년 33세의 나이에 서울에서 사망하였다. 해방후 그는 잊혀졌으나 후손들의 노력으로 1980년 대통령표장을 받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어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에 동상동민들은 지사의 넋을 기려 여기에 그 공을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