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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에 참여하여 군사를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북 영천에서 정용기가 조직한 의병 진영이다.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은 시종관 정환직은 아들 용기에게 의병을 일으키도록 명하였다. 정용기는 고향인 영천에서 이한구·손영각 등을 규합하여 창의하였다. 의진에는 대장 정용기,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소모장 정순기, 도총장 이종곤, 선봉장 홍구섭, 후군장 서종락, 좌영장 이경구, 우영장 김태언, 연습장 이규필, 도포장 백남신 등이 포진하였다. 구회수는 영덕·영해 방면에서 의병 모집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참모장 손영각의 사위로, 1907년 9월 재편성된 제2대 대장 정환직 진용의 도총장 구한서의 종질이었다. 구회수는 보현산과 동대산의 중간 영일군 죽장에 거주하면서 산남의진의 군사 모집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영천·영일·청송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