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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늑결됨에 울분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시종관으로 황제 측근에서 일하고 있던 동엄 정환직이 황제의 명을 받들고 그의 아들 정용기를 하향시켜 거사케 하고 자신은 서울에서 후원할 것을 약속하였다. 손영각은 정용기·이한구·정순기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정하였다. 이들은 일찍이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세한 사이였다. 먼저 민중들에게 알기 쉬운 권세가(勸世歌) 등의 노래를 지어 돌려서 애국정신을 일깨우고 고무하며 한편으로 통유문(通諭文)·격려문을 각계 각층에 보내에 함께 의병에 참가할 것을 권고하였다. 손영각은 정용기·이한구·정순기와 더불어 영천의 본부에서 모든 일을 계획 지도하였고 이규필·백남신·정완성·최기보·최치환·정진학·정대하·이창송 등은 각 지방에 대한 연락을 맡게 하였다. 그리고 각 지역별로 인원을 배치하여 의거 계획 진행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영천을 중심으로 신녕·흥해·청하·기계·죽장·영덕·영해·영일·장기·진보·청송·영양·봉화·예안·안동·비안·군위·하양·대구·현풍·청도·창녕·울산·언양·밀양·지례·고령·인동·칠곡·금산·성주·상주·선산·경주 등 영남지방 전체에 걸치는 의진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의진의 이름을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陳)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