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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전에 Roadview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온 것인데, 도로변의 묘소 안내판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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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2일 경남 울산군 언양면(彦陽面) 남부리(南部里) 시장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언양 장날의 만세시위는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천도교 계통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상남면(上南面)의 천도교 유지인 이무종(李武鐘)·이규인(李圭寅)·이성영(李成榮) 등은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4월 2일 언양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동지를 규합하였는데, 이 때 김정원은 만세시위계획에 참가했다. 이들은 거사를 앞두고 태극기를 제작하면서 준비를 진행시키던 중 거사 이틀전 주동 인물 가운데 최해규와 곽해진 등 4명이 일제의 검거망에 걸려 예비검속되는 일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비밀을 유지한 채 거사 당일인 4월 2일에 언양장터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할 수 있었다. 김정원은 태극기를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이어 1천여 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시위를 탄압하는 일경에 대하여 투석으로 맞섰다. 그러던 중 일본군 수비대의 총격에 의해 시위군중 1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김정원은 현장에서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