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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의 마을, 후리마을 후리마을은 물이 좋고 기름진 땅을 갖춘 미곡창이다. 예부터 언양현의 발상지로, 일제강점기에는 상남면(現 상북면) 면소재지였다. 지화, 후리, 오산마을에서는 독립투사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이곳은 천도교 사상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3.1만세운동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1919년(기미년) 4월 2일 수요일 오후 1시, 언양 장날을 맞아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 면에서 모인 수천 명의 군중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그들 손에는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사본이 들려있었다. 등사본을 비밀리에 등사해 장터에서 나눠준 사람은 이규장, 이규천, 이규로, 이무종 등 일곱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당시 상남면소에서 등사기를 훔쳐 이무종 집에서 선언문을 등사해 병영과 남창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현재 독립운동가 이규천 선생의 후손이 후리마을에 살고 있으며 독립선언문의 필사본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