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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정에 있을 때에는 사적비 아래쪽에 비문을 새긴 돌이 있었지만,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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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一 獨立運動 史蹟碑(3.1 독립운동 사적비)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기미년 3.1독립운동이 우리 고장에서도 구국과 애향의 깃발 아래 떨쳐 일어났음에 우리는 그 선열들의 우국애정을 잊지 못하고 그 분들을 경모하고 추념하는 뜻에서 여기 돌 하나에 그 사록을 밝히나니 저 한말의 민족 종교인 동학이 의암 손병희 선생에 의해 천도교로 개명되고 다시 흥기하게 됨에 이 고장 상북면 거리에 천도교 울산교구가 창립되어 날로 번창하였는데 기미년 2월에 당시 교구장이었던 김교경 선생은 고종 임금의 인산에 참례키 위해 서울에 머물면서 천도교의 비밀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를 등사하여 울산교구로 보내었으며 3월에는 상경한 이규장 교인에게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전해주며 거사 준비를 서둘라고 당부함에 천도교 교인인 최해규 이규장 이규노 이규천 곽해진 유철순 씨 등은 유림 대표 이무종 씨와 협의하여 중진회의를 열고 거사할 것을 결의하였다. 기미년 4월 2일 언양장날을 기하여 옛 언양현에 속했든 언양 상북 삼남 두동 두서의 5개면에서 모여든 군중들은 이무종 이규장 김성진 강병찬 황선운 이규인 씨 등 지사들의 두조에 의해 거사함에 수천명의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항일운동을 벌였다. 한편 전 울산 교구 장인 최해규 선생과 최해선 곽해진 유철순 씨 등은 일경에 의해 예비 검거되었다. 일경들은 시위군중을 총검으로 진압하였으며 저들이 성벽 위에서 쏜 총탄에 의해 한 분이 사망하고 네 분이 총상을 입었으며 수백명이 검거되었으니 형고를 겪은 이가 27명이었으며 또한 의거를 주도한 지사들은 국내외로 피신의 길을 떠났다. 온갓 박해에 시달리다가 임들은 이제 구천에 머무나니 그 한 많은 사연을 어찌 필설로 다하리오. 이제 이 고장의 후손들은 가신 임들의 영령 앞에 옷깃을 여미어 명복을 빌며 후손들에게 애국애향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이곳 산자수명한 간월산 계곡 작천정 입구에 작은 사적비를 세웁니다. 1992년 10월 3일 문학박사 강의수 지음 계림 김정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