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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락 선생은, 경남 울산(蔚山)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8일 경남 울산군 온양면(溫陽面) 남창리(南倉里) 시장에서 동지들과 함께 군중을 주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온양면 남창리의 만세운동은 광무황제(光武皇帝) 인산(因山)에 참가했다가 3·1운동의 현장을 목격하고 돌아온 이재락(李在洛)이 이수락 등 마을 청년에게 만세소식을 알리면서 추진되었다. 평소 항일의식을 길러오던 이수락은 한학자 이용중(李龍中)의 문하에서 동문수학 하던 이쾌덕(李快德)·이희계(李希季)·이용락(李龍洛)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대한 의논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때 4월 4일과 5일에 걸쳐 일어난 이웃 하상면(下廂面) 병영리(兵營里)의 만세시위는 이들에게 더욱 용기를 복돋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수락 등은 4월 8일 남창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4월 7일에는 이용락의 집에서 밤을 세워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거사일인 4월 8일 오후 4시경에 장터에 집결하여 태극기를 장꾼들에게 배포한 뒤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자 수백 명이 장꾼이 여기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거행하였다. 이수락은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현장에서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24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항소하여 1919년 5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로 감형되어 공소하였으나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