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page


76page

1932년 3월 16일 경남 양산군 양산농민조합원의 구금에 항의하여 조합원들과 함께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양산농민조합은 1932년 2월 20일 양산 사회단체회관에서 제3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첫째, 소작권 영구확립, 둘째, 지세공과금(地稅公課金)의 지주부담, 셋째, 소작료 4할납부 등을 결의하였으나 일경은 신영업(申榮業)을 비롯한 16명의 조합간부들을 체포하였다. 그는 김장호(金章浩)와 함께 피체된 조합간부들을 구출할 것을 결의하고 최학윤(崔學潤)·최해금(崔海金)·최달수(崔達守)·김태근(金泰根)등 3백여 명의 조합원들을 주도하여 동년 3월 16일 양산경찰서에서 조합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운동을 폈다. 이때 일경의 발포로 인하여 조합원 윤복이(尹福伊)가 순국하였다. 일단 양산협동조합 사무소로 피신한 조합원들은 다시 피체된 조합간부들을 호송하는 도중 구출할 계획을 세웠으나 일경의 급습을 받아 정진영을 비롯한 170여 명의 조합원이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32년 10월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죄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