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page


73page

駒澤大學(구택대학)을 졸업한 즉시 귀국하여 통도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3.1운동정신과 국권회복의 민족정신 고취에 심혈을 기울이셨다. 이 사실을 탐지한 왜경이 학생들의 필기장을 조사하여 증거물로 제시 공은 양산경찰서로 연행되어가 조사를 받고 1942년 4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44년 4월 초에 출옥하셨으나 그 후에도 사상개전이 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다시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1945년 7월까지 1년 3개월간 잡역부로 혹사 당하셨으니 그 고초가 얼마나 하셨으리. 그 후 8.15 조국광복은 공에게 새로운 용기와 조국에 헌신할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으니 교육보국의 일념으로 다시 교육계에 투신 1964년 3월 보광중학교 교장으로 취임 후진양성에 심혈을 경주하시다가 1975년 정년 퇴임하시고 1983년 8월 15일 건국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으신 후 1985년 5월 27일 77세로 타계하셨다. 이제 여기 우뚝 솟은 정족산 정기 어리고 기름진 땅 굽어보이는 곳에 정부의 애국지사묘역 정화사업으로 묘비를 세워 필생을 나라 위해 바치신 공의 지조와 업적을 기리니 길이 길이 겨레의 귀감이 되리. 1985년 을축 11월 23일 양산군수 이두연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