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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한흥교 선생의 묘소는 한형석 선생의 묘소 바로 뒤에 있었다. 淸州韓公 興敎 之墓(청주한공 흥교 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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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일본 강산(岡山)의학전문학교 졸업 후인 1911년 10월에 상해로 망명하여 중국혁명군 구호의장으로서 소주(蘇州), 진강(鎭江) 등 전선에서 많은 전투에 참가하였다. 1912년에는 북벌혁명군 홍십자회 대장으로 피명되어 활동하였으며, 항주(杭州) 및 북경의학전문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어 재직하였다. 1912년에 상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 조성환(曺成煥)과 함께 동제사(同濟社) 조직에 참여하고 독립운동자들의 의료를 전담하였으며, 1914년 상해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계속 활동하였다. 이후 일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북경(北京)으로 돌아와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신채호와 함께 중외통신사, 전광신보사 창립에 참여하고 노령, 미주, 중국 각지에 신문을 발송하여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1925년 6월에는 북경(北京)에서 원세훈(元世勳) 송 호(宋虎) 등 동지들과 선두자사(先頭者社)를 조직하고 기관지 "앞잡이"를 발행하는 등 중국국민과 연합하여 항일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 한 중연합으로 "타도일본"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1935년에는 북경(北京), 천진(天津) 등을 돌아다니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산서성 태원(山西省 太原)에 정착하여 대동병원(大同病院)을 개업한 뒤, 항일운동을 지원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