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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만세운동 3월 5일 한용운의 밀명을 받은 오택언은 독립선언서를 한가득 가지고 통도사에 도착하였으나 3월 7일 밀고로 주동자로 피검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우스님(양대응, 梁大應)을 중심으로 김진옥, 박세문, 이기주 등과 함께 거사는 차질없이 추진되었다. 만우스님은 통도사 지방학림(현 보광중학교)의 학생대표 김상문, 통도사 강원 승려 등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3월 13일 신평장날을 택하고 만세운동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예정대로 3월 13일 신평 장날에 하북면 줄다리기 대회를 빙자하여 군중집회가 개최되었으며 거사 당일 통도사 부속 보통학림 및 지방 학림 학생 김상문을 위시한 수십 명의 불교 전수부 학생, 승려 등이 줄다리기 군중 및 장꾼들과 합세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전단을 배포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를 감행하였다. 뒤늦게 사건을 접수한 헌병경찰이 현장을 급습하자 군종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주모자 김진욱은 체포되었으며, 김상문은 피신 후 상해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하북면사무소에 근무한 박세문은 거사에 참여하고 주동자들을 피신시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