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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보창로 보고리에서 별세하니 당년 30세이었다. 선생의 유택은 중국 상해 정안사 묘지에 있다. 그 백씨는 소산 현태이니 역시 쟁준한 경륜지사로서 군가형제막능당의 세평이 있기도 했었다. 소산이 일즉 상해정안사 묘지를 찾아서 그 묘표를 세우고 도라와서 조국이 광복하기 전엔 사제의 체백이 고국으로 오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사제의 유지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양산인사들은 모두 목메인 소리로 노래처럼 부르기를 자나깨나 나라생각 서나앉으니 겨레걱정 정성도 솜씨도 모자람이 없었것만 너무나 짧은세월 어찌하도 그 어찌하료 아으 단기4292년 기해4월 15일 양산군민 일동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