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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의거가 이러나던 기미년 3월 21일 오후 청년지사 우산 윤현진 선생은 작으마한 말을 잡아타고 양산읍에서 물금역으로 달려가는데 그날이사 몹시도 거센 석양바람에 옷깃을 날니면서 서편길로 달려가는 인마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동안까지 말없이 바라보고 뜻깊으게 보여주는 두 동지가 있었으니 민초 최학선 노암 지영진이었다. 그날 3인의 동지는 점심을 같이 하면서 은근한 수작이 있었으니 그것은 국사 이외에 딴 말은 없었다. 그 때 선생은 가족 아무도 모르게 두 동지와 굳은 맹약을 하고는 중국 상해로 떠나는 거름이었다. 선생은 용하게도 왜경의 금망을 벗어나서 무사히 상해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생은 제동지의 회석에서 소지의 전대를 그냥 기우려 그 전부를 즉석에 헌납했었다. 기미 4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되었다. 선생은 그 때 임정조직의 주획에 참여해서 평소의 회포를 전포하려 하였다. 동시에 의정원경상도의원에 피선이 되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