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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명구(明九), 호는 우산(右山)이다. 윤현진은 7세 때 고향인 경남 양산의 만성재서숙(晩惺齋書塾)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5세 때인 19807년에는 숙부 윤상은(尹相殷)이 설립한 구포의 사립 구명학교(龜明學校)를 1회로 졸업하였다. 17세가 되던 1909년에는 중국의 난징, 베이징, 상하이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국제 정세를 익혔다. 1912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메이지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면서 신익희·김성수·장덕수·송진우 등과 함께 '조선 유학생 학우회'와 '조국광복동맹결사단'을 조직하여 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안희제의 백산상회에 입회하였고, '대동청년단'에서도 활동하였으며, 양산에 의춘학원을 설립하여 후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또 일본 상인에 대항하기 위해 '의춘상행(宜春商行)'이란 소비조합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소비조합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