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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3월 20일 원평장터에서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옥고를 치룬 8명의 애국투사들이 바로 이 마을 출신 농민들이다. 만세운동을 모의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을 준비하여 각처에 연락을 취한 곳도 이 마을이다. 당시 이 마을은 40여호의 농촌으로서 천수답에 하늘만 바라다보고 사는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부자도 없었으려니와 이렇다할 학자도 없었다. 순박한 농촌인심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이 마을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 마을은 주민의 대다수가 동학농민군의 후예들이었고 특히 만세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전도명은 원평 구미난 싸움의 동학농민군 출신이었다. 만세운동 당일 이 마을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원평장터로 달려가 장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대표 8명은 일본경찰에 의해 구속되었고 그 이튿날 새벽에 일본헌병 100여명이 이 마을을 포위하고 수색을 하였다. 군화발로 안방에 들어가 닥치는대로 뒤지고 노인 부녀자 할 것 없이 발로 걷어차며 총대로 욱박질렀다. 그러나 이 마을 농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거하여 투쟁을 계속하였으니 그 무서운 감시속에서도 옥고를 치르고 있는 투사들의 가족들을 돕기 위해 그해 1년 농사를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지어 주었다고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이 어유동 농민들의 눈물겨운 독립투쟁정신을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애국충혼으로 이어 받들고저 지난해 원평장터 기념비에 이어 오늘의 이 기념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