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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의 주역 김덕명(金德明) 동학의 주역 김덕명은 1845년(헌종 11년) 10월 27일에 금구 용계(龍溪, 현 금산면 쌍용리 용계)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42세때 1886년(고종 23년)에 전라도지방에 동학이 포교되고 있었다.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세상을 개혁하고 보국안민(輔國安民)하자는 교리를 접한 그는 최시형(崔時亨)에게서 도를 받고 이듬해(1887년)에는 원평에서 도회소(都會所)를 설치하고 포교에 주력하였다. 그는 1892년(고종 29년) 11월 삼례에서 신원운동이 있을시 교도를 만여명이나 동원하여 관에 압력을 가한적이 있으며, 1894년(고종 31년)에 전봉준이 주동한 고부민란 이후 그해 3월 김덕명은 총참모가 되어 백산에 모여 혁명을 주동했으며, 이때 김덕명포에서 동원된 혁명군은 2천여명이라고 한다. 동학군이 4월 7일 황토현전투에서 4월 27일 전주성을 점령하기까지 김덕명포의 동학군이 주력을 이뤘다고 한다. 마침내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원평으로 좌초하고 10월 25일 귀미란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는 이듬해 1895년 체포되어 51세를 일기로 형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