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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선생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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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李沂, 1848~1909)의 본관은 고성이며 호는 해학(海鶴), 자는 백증(伯曾)이다. 실학을 연구하였고 유형원·정약용 등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려다 김개남의 반대로 구례 자택으로 돌아왔다. 1899년 양지아문을 설치할 때 양지위원으로 아산의 토지를 측량하였다. 1905년 일본에 가 일본천황과 정계 요인에게 한국 침략을 규탄하는 서면항의를 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제되자 귀국하여 한성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장지연, 윤효정 등과‘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과 민중계몽운동을 하였다. 1907년 나인영 등과‘자신회’를 조직하여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7년의 유배형을 받고 진도로 귀양갔다. 석방된 후 서울로 돌아와『호남학보』를 발행하면서 민중계몽운동에 종사하였다. 저서에『해학유서』가 있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