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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유재 장태수선생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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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을 전후하여 일제 침략에 항거하다가 순국함으로서 청사에 빛을 남긴 의인열사들이 많으나 그 중에서도 나라를 위하여 대절을 지키되 부모가 주신 유체에 상흔을 내지 않고 단식으로 죽음을 기다려 끝까지 충과 효를 양전한 분이 있으니 이는 곧 일우재 장태수선생이다. 선생은 자가 성안이요 호는 일우재라하니 본관은 인동으로 고려조의 의신인 덕녕부윤 송은공 안세를 현조로하여 산연공 한두의 3남으로 헌묘 신축년 12월 24일에 김제군 금구면 상신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이 과인하고 지기가 탁이하여 철묘신유년에 21세의 약관으로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관은 승문원 정자전적 예조정랑 지평헌납 병조참의 대동련 부승지 중추원 의관등 요직을 거쳐 종2품인 가선대부 지종원 부유에 이르고 외직으로는 양산과 고산의 두 군수를 역임하였다. 양산은 해구를 막는 동남방의 요충인데도 방어시설이 소흘한지라 부임즉시로 조정에 상신하여 금오천냥을을 보조받고 사재 오천냥을 자연하여 합 일만냥으로 병기와 선박등 전략물을 갖추고 별포군 100며명을 양성하여 불우에 대비하니 이는 한말의 일제침략을 예견한 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