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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평장터 1919년 3월 20일 원평장날을 기하여 이 고장 출신 농민들도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일어나 독립만세를 부르니 수백명의 장사꾼들이 이에 합세하여 원평장터는 삽시간에 만세의 함성으로 들끓었다고 한다. 이 운동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일이었다. 금산면 구월리에 거주하던 배세동 청년이 앞장서고 같은 마을의 전도명,전부명,이병섭, 전천년, 이완수,고인옥등이 함께하여 3월 16일 사전 모의 끝에 3월 20일 원평장날에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하고서 태극지와 선언문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 관헌들의 출동으로 장사꾼들은 강제로 해산 당하고 주동자도 붙잡혀가 온갖 고문과 폭행끝에 1년내지 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당시 실형을 받은 9명의 독립투사들은 왜경의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옥후에도 많은 병고에 시달렸으며 갖은 억압과 감시의 굴레 속에서 괴로운 한평생을 살다가 갔다. 특히 원평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배세동투사는 왜경의 감시에 쫓기어 유랑생활을 거듭하다가 1942년 전남 여수에서 왜경에게 재검속되어 고문의 후유증으로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