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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모 선생은 전라남도 함평 사람이다. 1919년 3월 26일 함평읍 장날을 이용하여 조사현송대호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일찍이 이곳의 유지인 조사현·송대호 등과 접촉하면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으며, 마침 국장에 참배하고 귀향한 윤백언도 이에 가담하여 함평 장날인 3월 26일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사전준비를 하였다. 이에 그는 김용언·윤태완·이행록등과 사전준비를 하면서 윤치영·김재문은 함평면, 김준령은 대동면, 모현기·정영조는 그 밖의 다른 면의 책임자로 뽑았다. 3월 26일 오후 4시경 보통학교 학생과 청년·주민들로 수백명의 시위군중이 장날인 함평 장터에 모이자,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조사현 등과 함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시위행진하였다. 그러나 이때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 ·헌병의 야만적인 무력행사로 1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20여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그도 함께 체포되었으며, 결국 1920년 5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