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page


81page

항일의병장 임병찬(林炳瓚) 장군 임병찬의 호는 돈헌(遯軒)이며 본관은 평택이다. 1851년 2월 5일(음)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광월마을에서 임용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한하글 통달했으며 16세 때 전주 지방시에 급제하여 낙안군수 겸 순천진관 병마동첨절제사를 역임하면서 농정에 공을 세웠다. 을사늑약(1905)으로 국운이 기울자 1906년 2월 스승인 면암 최익현선생과 함께 의병(병오창의)을 일으켰다. 태인,정읍,순창,곡성 등지에서 의병 200여 명을 이끌고 왜적과 싸웠으나 패하여 최익혀노가 함께 사로잡혀 대마도에 감금되었다. 최익현은 그곳에서 단식으로 자결하였고 임병찬은 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경술국치(1910) 직전 고종의 밀지로 종2품 가선대부가 되고 대한독립의군부 총사령에 올라 지역을 돌며 항일구국투쟁을 하다 1914년 6월 왜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세 번 자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그 해 6월 임병찬은 거문도로 유배되어 1916년 5월 23일(음) 단식을 감행하여 마침내 순국하였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 동상은 임병찬 장군의 강인함과 진취적인 애국 기상을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