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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기미 3.5 독립만세운동 약사 군산시의 기미 3.1독립운동은 당시 군산구암교회 교인으로 군산영명학교(현 제일중.고)를 졸업하고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서울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재학중이던 YMCA회원 김병수 학생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가 민족 33인의 한 분인 이갑성 애국지사로부터 독립선언문 200여매와 태극기를 전달받아 2월 26일 군산에 내려와 영명학교 은사인 박연세(당시 구암교회 장로) 교사집에서 이두열, 김수영, 고석주, 김윤관, 김연묵, 이동욱, 문용기 등을 만나 서울의 독립운동을 은밀히 알리고 군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는 것을 협의하였다. 그 후 박연세 교사와 같은 학교 교사들과 학교 기숙사에서 독립선언문 3,500매와 태극기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3월 6일 서래장날에 일제히 거사를 하며 시위를 하려고 하였는데 3월 5일 새벽 군산경찰서에서 일본인경찰 10명이 무장하고 나타나 주모자인 박연세, 이두열, 김수영 등을 연행하는 바람에 거사계획은 좌절될 뻔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당시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활동했던 김윤실 교사는 바로 학생간부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거사가 수포로 돌아가기 전에 당일 시위하기로 결의한 후 학생 양기철, 전세종, 김영후, 송기옥, 이도준, 홍천교, 고준명, 유복섭, 오한길, 강규언, 강인성 등이 앞장서 시위에 들어가니 같은 기독교 계통의 학교인 멜본딘(현 군산영광중.고) 여학교의 학생도 합세하며 시위에 동참하게 되고 군산 구암교회 교인 다수와 궁멀(궁을리) 예수병원 사무원 양기준, 이준명, 유한종, 양성도, 김창윤, 송경태,송원경, 임병율, 이진규, 김준관, 이기주, 이재근 등이 합세하였으며 시민 정문선, 김영상, 전종식, 문재봉, 홍종억, 전봉신, 박동근, 임종우, 이병관이 합세함으로 500여명으로 늘어나고 경찰서 앞에 이를 때는 천여명으로 불어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하늘에 사무치게 되었다. 당시 군산시의 인구는 13,604명(한국인 6,581명, 일본인 6,809명, 외국인 214명) 이므로 1,000여명의 시위 군중은 큰 무리라 아니할 수 없다. 군산의 기미 3.5독립만세운동은 1903년 2월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선교회에서 기독교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한 영명학교와 멜본딘 여학교 교사, 학생, 궁멀 예수병원 사무원과 그리고 구암교회 성도 등 기독교인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어 천주교 불교 등 범종교와 시민 등이 함께 하여 전개하였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3.1만세운동은 군산의 구암동산에서 3월 5일 발원되어 끈질기게 이어져 총 28회에 걸쳐 연인원 30,700명이 참가하였고 사망 53, 실종 72, 부상 195명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군산의 3.5독립만세운동은 호남 최초는 물론이고 한강 이남 최초의 거사요, 전북지역 최다수의 순국자가 발생한 전라북도 도민의 자랑이요, 군산 시민의 긍지이며 자존심이다.